1.
학교가 구조조정 이야기로 시끄럽다. 더 정확하게 쓰자면, 자기들의 미숙한 행동방식과 학교 측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입지가 매우 좁아진 운동권이 구조조정반대를 하기 위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이마저도 퇴학 및 정학 조치로, 이제 그 힘을 다하고 말았다. 그 바닥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겐 이런 표현이 기분 나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지금 중앙대학교를 다니는 사람중에, 총학생회측 인사, 구조조정 당하는 학과들(그나마도 자연대는 학과제 유지로 합의 본 뒤 입 다물고 있다), 그리고 학교 전체에서 한 줌도 안되는 반자본주의적 인간들을 제외하면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가진 돈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다고들 생각하니까.
구조조정에 대해 대다수 학우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두산이 들어오기 이전의 중앙대는 그야말로 막장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재단에는 '천원재단'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장부상 재단전입금이 1000원이었다는 소문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실제로도 그랬던 모양이다. 해마다 모이는 등록금을 겨우 끌어모아서 학교를 운영하는 실정이었다. 학교를 운영하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없으니, 교육 목적이든 자산 증식 목적이든 투자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떻게 마술같이 법학관을 지어놓아서 꽤 많은 학생을 유치하는데도 성공했지만, 경쟁학교로 불리는 타 대학들에게 그 인원마저도 빼앗겼다. 이 과정에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있으나 마나 한 재단이라서 '식물재단'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지금까지 나열한 정보들에 내가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전 재단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인식 속에는, 누가 들어오든 이것보단 낫겠지- 라는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여러 좌파매체들이 중앙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기업의 노예가 되기 위해 준비하는 학생들'이라고 단순히 치부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두산이, 사람이 미래라고 말하는 그 기업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했다. 그 어느 누구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 줌도 안되는 좌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 앞 술집에서 처음처럼 소주를 찾는 사람이 늘어갔다. 두산에서 만드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두산 곰돌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모기업이 두산이기 때문이다. 폴로에서 옷을 살 때는 자신있게 학생증을 내밀었다. 두산에서 유통하는 브랜드라 할인이 된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두산 역시 학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학교 인수와 동시에 도서관을 리모델링했다. 약대 건물과 연구개발동(R&D센터)을 짓기 시작했다. 인천 검단과 하남시에 부지를 매입해 새로운 공부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 뭘 덧붙이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문과대에 멋드러진 엘리베이터도 안전하게 달아주었다. 두산과 함께라면, 중앙대학교는 정말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두산 올마이티. 두산 재단은 중앙대학교라는 공간을 외적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재단은 학사구조 또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을, 이사장의 입을 통해서 여러 번 천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2.
학교에서 내세우는 구조조정안에는, 어떤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컨설팅 업체에 맡겨진 객관적인 조사결과라고 해도 그렇다. 이 편견은, 다름아닌 '취업'에 대한 편견이다. 실제 취업률은 그야말로 순수 인문학이라 불리는 국문-사학-철학과도 만만치 않고, 독어독문이나 불어불문이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아니, 사실은 지금 대학생이라고 묶인 이들은 취업과 관련한 처지란 비슷비슷하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흔히 취업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과와, 진짜 취업률이 낮은 과는 대개 같지 않다. 하지만 이번 구조조정에서 밀려나게 된 과들은, 대개 취업이 잘 안될 것 같은 과들이다.
이걸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사범대 구조조정 안이다. 애초에 학교측에서는 가정교육과, 체육교육과를 없애고 국어교육과, 수학교육과를 만들겠다고 했다. 최종안에서는 학교 쪽이 양보해서, 이번 달에 나온다는 각 대학 사범대를 비교, 평가하는 자료를 보고 난 뒤에 결정하겠다는 식으로 흘러갔지만. 이건 교사 자리가 많이 나는 과를 새로 만들고, 적게 나는 과를 없애겠다는 뜻으로 밖에는 더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러면 취업인원이 올라갈테고, 운이 좋으면 취업률도 올라갈 수 있으니까. 이것을 가지고 입결이 올라가기 때문에 이런 방안을 내놓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국교과와 수교과를 만들어서 입결이 올라가는 건 그게 취업이 잘 될 것 같은 과이기 때문이다. 입결이 높은 학생들이 들어와서 취업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앞뒤를 바꾸지 않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외교학과가 없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정외과가 없어진 것은 학교의 구조조정 기준이 단순한 입결 상승이 아니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다. 이름은 그럴듯해보이지만, 사실상 졸업하면 마땅히 취업할 곳은 보이지 않는. '정외과 나와서 뭐해요?' 라는 질문은, '철학과 나와서 뭐해요?' 라는 질문만큼이나 복잡미묘하다. 철학과 나와서 철학관 차리지 않듯이, 정외과 나온다고 국회의원 하거나 외교관 하는 게 아니니까. 물론 정외과는 안성의 유사학과와 묶였고, 겉으로 봤을 때는 그게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예전에 양쪽에 각각 지원해주던 예산을 합한 만큼의 금전적인 지원이 있을까? 이에 대해서도 난 미덥지 못하다.
3.
그래서, 이번 구조조정에서 학부제로 통합을 앞두고 있는 학과들 이외에 다른 몇몇 학과들도 이런 편견에서 예외일 수 없다. 위와 같은 구조조정 방향을 생각했을 때, 이들도 없어지는 게 맞다. 그런데 없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그래도 (국)문사철 없애는 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나름 서울 10위권의 종합대학인데 여기를 닫아버리면 품위없다는 이야기를 들을지 모른다.' 는 학교측의 정치적 안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인문학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팽배해있다 - 인문학 관련 학과 나오면 취업은 잘 안되겠지만, 뭔가 고상해보이고 또 쟤네들은 교양같아 보이기도 하고, 게다가 먹물들에게는 모든 학문의 핵심이라는 인식까지 박혀있다. 게다가 유럽문화학부로 묶은 다음에 어문계열 학과들을 없애버리는 것은, 건국대가 먼저 시행했음에도 큰 반론이 없었다. 따라서 불문, 독문, 일문은 이런 안배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학부제로 묶은 다음 전공 다 살려놨으니 인문학 죽이기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결론적으로는, 모르고서 그런 소리를 한다면 순진한 사람이며, 알면서도 저렇게 말한다면 속이 음흉한 사람이다. 과연 학부제로 묶은 뒤에 지금과 같은 교수진과 인원수를 유지할까? 이것이 핵심이다. 아직 교수 숫자와 모집단위 인원수는 발표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만약 다 합쳐놓고 입학정원도 그대로 교수 수도 그대로 할거라면, 학교 측이 현재 시행하는 구조조정의 목적과 모순된다. 게다가 그럴 거라면 굳이 합칠 이유가 없다. 학교 측은 통폐합 이유로 '유럽 전체를 보는 안목을 기르게 하기 위해서' 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건 현재 체제에서도 그냥 그렇게 하고 싶은 독문과 학생이 불문과 수업을 들으면 그만이다.
4.
이런 식으로 구조조정을 하려 하는 이유는, 지금 법률상으로 학교가 무작위적으로 어떤 과를 새로 만들거나 입학정원을 마음대로 늘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단위의 모집인원을 늘리려면, 반드시 다른 단위의 모집인원을 줄여야만 한다. 이러저러하게 편법을 동원하면 되긴 하지만, 그렇게 늘린 인원은 취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식물재단, 1000원재단이라고 불리던 시절 그렇게 늘려온 인원이 현재 두산 재단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구조조정 방향에 비추어봤을 때, 입학정원이 늘어나는 단위는 경영대, 공대 쪽이 될 것이다. 공공인재학부나 글로벌지식학부 같은 특화된 학부들에도 많은 정원이 필요할 것이다. 줄어드는 단위는 당연히 문과대일 것이다. 문과대 뿐일 수도 있고, 그 이외에 다른 과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현재 나온 구조조정안만 보아도, 문과대에 지원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더 확실하게 예상할 수 있다. 문과대에서 잘 나간다는 과 - 심리, 사회 - 가 신설된 사회과학대로 빠졌다. 또 그 밑에 공공인재학부를 집어넣었다. 공공인재학부는 두산이 학교를 인수한 이후 만든 학과다. 또한 전략적으로 대폭 지원한다고 새로 만든 이름이 그럴듯한 학부-학과들(글로벌지식학부 등)은 문과대 밑에 하나도 없다. 현재 구조조정안에서, 문과대 밑에는 취업 이미지에서 찬밥 취급받는 과들밖에 남지 않았다. 국문과, 영문과, 유럽문학부, 아시아문화학부, 역사학과 그리고 철학과.
이것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다. 사실 문과대의 경우, 두산 이후에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2018년까지 학교를 대대적으로 개혁한다는 계획에서도, 문과대는 벽에 페인트칠 해주고 끝이다. 엘리베이터는 계획에 없던 것인데, 갑작스레 생겨난 것에 불과하다. 내부적으로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예를 들면, 철학과는 2004년에 전임강사(정교수)가 일곱 명이었다. 2004년 교수 두 명이 동시에 정년퇴임한 뒤, 그 자리는 아직도 공석이다. 정확하게는, 철학과에 배정된 전임강사 인원이 7명에서 5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공석이 아니게 된 것이다. 두산이 들어온 뒤에도 철학과 전임강사는 여전히 5명이다. 전임강사의 수는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학)과에 얼마나 지원을 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척도다. 그런 면에서, 문과대에 대한 지원은 두산이 중앙대학교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하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앞으로 10년 남짓 동안에, 철학과는 전임강사 두 명이 또 정년을 맞이한다. 어떻게 될지 의문이다.
5.
따라서 불문, 독문, 일문처럼 갑작스럽게 문을 닫거나 하지 않더라도, 중앙대의 인문학은 언제나 위기의 순간에 있다. 학교가 궁극적으로 학교를 바꾸려고 하는 방향과, 몇몇 학과들의 성격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구조조정 과정을 지켜보면, 인문학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끔찍한 '그 일'이 얼마 가지 않아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반대를 해야하는 세력은 대안부재에 빠져있다. 그래서 흔히 써먹던 '인문학 죽이기'라는 프레임에 갇혀 모든 상황을 해석하는 실정이다. 물론 인문학 죽이기가 맞다. 하지만 학교는 인문학 죽이기를 목표로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말을 내걸고 학교를 상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인문학 죽이기와 취업에 용이한 학교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집합으로 본다면, 전자가 후자의 부분집합이다. 실제로 이런 총학생회 측의 전략 때문에 '인문학'의 범주에 묶이지 못하는 구조조정 대상 학과들, 이를테면 사회복지학부에 통합되는 사회복지학과, 청소년학과, 아동복지학과, 그리고 학교를 사랑하는 몇몇 인사들에게 중앙대의 눈엣가시같은 학과인 민속학과 등은 어문계열 학과들과 힘을 합하지 못했다. 반대 세력은 스스로 자기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서 무장해제한 채 학교와 대적한 것이다.
애초에 투쟁의 가장 앞에 내걸었어야 할 문구는 '일방적 구조조정 반대'였다. 이 부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현 총학생회의 가장 큰 패착이다. 중앙대학교를 주목하는 모든 사람들이 '인문학 죽이기', 기초학문수호라는 단어에만 매달려서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것을 가타부타하는 사이, 비인문학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주장조차 해보지 못한 채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진짜' 인문학인 국문-사학-철학과는 당장에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저 말에 공감할 수 없었기에 움직이지 않았다. 외로운 투쟁은 결국 실패를 자초한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런 것들이 중첩된 효과로서, 학생들은 학교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투쟁을 주도한 어문계열 학과들에겐 절망만 남았으며, 비인문학 계열 학과들의 구성원은 자력갱생하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문과대에 대한 구조조정은 학교측의 구상이 7~80% 반영된 형태로 관철되었다. 총학생회는 '학교 발전에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라는 멍에를 단단히 뒤집어썼다. 구조조정에서 제외된 다른 학과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사태를 관망하고, 이 글처럼 그저 관전평을 쓰기에만 바쁘다. 위와 같은 문장들은, 구조조정을 바라보는 대다수 학생들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6.
대안부재에 허덕이고 결국 실패로 끝난 투쟁을 바라보며, 더 좋은 방안은 없었을까 생각해본다. 일단 우수인재를 많이 끌어들이고, 배치표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문과대의 인원을 줄이라한다면, 이것은 수용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문과대에 있는 그 어떤 과도, 특히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어문계열 학과들과 민속학과 등은 더더욱 그렇지만 한 학년에 20명 이상 필요하지 않다. 입학정원을 줄인다면, 우선은 가시적으로 이전에 비해 입학성적은 당장 오를 것이다. 어차피 입학은 등수니까.
또한 학습과 현장적용보다는, 긴 시간 동안 도제식으로 교수가 쌓은 학문적 성과를 전수해주는 게 훨씬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인문학과 어문계열 학과 및 비취업(이미지가 짙은 여러) 학문들의 특성상, 인원이 많을 이유가 전혀없다. 여기에서 남은 인원은 학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려는 학과로 돌리면 된다.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학생이라면, 이것은 우수학생을 선발하고 그 학생들을 취업에 용이한 전공으로 돌리며, 그 뒤에 취업전선에 내보내는 데 가장 필요한 방안이다.
그리고 현 구조조정안에서 심리학과, 사회학과 등은 사회과학대로 가게 되었다. 따라서 중앙대 문과대는 취업 이미지에서 더욱 취약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을 위해, 구조조정 뒤에 문과대에 남은 학과들에 입학하는 인원은 원하는 사람에 한해 자유롭게 경영 및 경제 등 실용학문에 대한 복수전공이 가능하도록 해야한다. 대신 인문학 전공자라 할지라도, 입학 당시 해당 학과로 들어온 사람들에 비해 전혀 학습 정도가 뒤쳐지지 않도록 복수전공 취득조건을 대폭 강화해야한다. 예를 들면 입학시부터, 적어도 2차학기 이내에 실용학문을 선택하도록 하여, 입학전공과 같은 비중으로 듣고 졸업하는 식이다. 이러려면, 졸업에 필요한 필수이수학점을 대폭 높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문과대 안에서도 취업트랙과 학문트랙을 확실하게 나누면 문과대 내의 취업이미지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 생각한다.
7.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문트랙이다. 가장 먼저 보장되어야 할 것은 전임강사 증원이다. 이것은 단지 문과대뿐만 아니라 모든 과에 필요한 문제이다. 도서관도 중요하고, 약대, 의대, 병원도 중요하지만, 학교를 튼실하게 만들려면 우수한 연구자에게 생계걱정을 하지 않을 기반을 마련해주고 그들로 하여금 학생들에게 강의하게끔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인문학은 우수한 연구자가 또 다시 우수한 연구자를 길러낸다는 점에서, 전임강사 증원이 가장 시급하다.
물론 이 연구자들이 단순히 학과 내에서만 연구자를 길러내라는 것은 아니다. 마치 취업트랙에서 문과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실용학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학업을 수행하듯, 이 연구자들도 실용학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특히 이것은 공공인재학부와 글로벌지식학부 같은 전략단위와 연계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단위들는 단순히 한 두 학문만이 참가하는 것으로 그 학과가 목표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따라서 순수학문 분야에서 증원된 전임강사들은, 전략단위의 학생들에게도 많은 강의를 해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통폐합을 앞두고 있는 어문계열 학과들은, 입학정원을 축소할지라도 강의의 규모나 전임강사의 수는 절대 줄여서는 안된다. 만약 글로벌지식학부 학생들에게 제3전공으로서 의무적으로 외국어문계열(독,불,일,러,중) 중 한 학과을 이수하게 한다면 이름에 걸맞는 커리큘럼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어문계열 학과들이 존재하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공공인재학부의 경우에는 공무원-로스쿨에 필수적인 철학을 3전공으로 설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인문학과 취업 부분에 대한 절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에서만 통하는 방법으로는, 세계적인 대학이 될 수 없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인정받는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모두 산학협력 만큼이나 기초학문이 튼튼한 대학이다. 문제는 그 기초학문들이 얼마나 자기 연구와 산학협력을 접목시킬 여건을 마련해주는가에 달려있다.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재단의 육영 방향이나 의지에 의해 학교의 방향이 어느 정도 결정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대학을 노린다면 심도있는 인문학 연구를 결코 놓아버려서는 안된다.
8.
사실 이렇게 쓴 것은 너무나도 거시적인 계획이다. 당장에 제시할 수 있는 계획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런 뜬구름잡는 것 같은 계획을 기업재단에서 받아줄리도 만무하다. 당장 급한 것은 학부 통합으로 자신들의 수업계획과 진로탐색에 차질이 생긴 해당학과 학생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만약 학부통합 대상 학과 학생 전원에게 원하는 과로 조건없이 전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지금보다 반발이 적지 않았을까. 아마 이런 조건이라면, 학교 본부에서 내세운 초안 - 없어지는 과가 부지기수였던 그 초안조차도 통과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불리한 처지에 놓인 당사자로서 항의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것을 빌미로 퇴학 및 정학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또한 그 절차와 결과가 전혀 합리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은 더욱 아쉽다. 이것은 분명 학교 본부 측이 이런 일을 강행하더라도 의미있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저지른 일이다. 하지만 학교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학문적'으로 껴안고 가야한다. 그래야만 학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학교가 전혀 유연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나는 화가 난다.
9.
어쨌든 나는 현재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에 대해 반대한다. 구조조정 당사자들에게 들었던, 낯을 들 수 없게 부끄러워지는 그 말들을 난 기억할 것이다. 퇴학당한 선배와 정학당한 후배를 되뇌일 것이다.


덧글
총남 2010/06/19 22:19 # 삭제 답글
저와는 생각이 다른 부분도 상당히 많긴 하나 잘 읽고 갑니다.특히 총학 관련한 생각은 저와 비슷하네요. 프레임을 잘못 잡은 것이 이번 총학 및 구조조정 반대연합에서 가장 실수한 부분이라는 점에 동감합니다. 저조차도 아무리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기초학문, 인문학 수호라는 말에는 동의해줄수가 없더군요.
한가지.. 잘못 이해하신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부연설명 남기고 갑니다.
글로벌지식학과가 두어번 정도 언급되던데, 전략적인 학과로 이해하신듯 합니다.
글로벌지식학과는 산업체 등에서 3년(?)(일정기간인데 3년이란 수치는 정확한 것인지 좀 불확실합니다.)이상 근무한 인원들을 교육시키는 학과입니다. 국가에서 산업체 인원들의 대학진학을 위해 신설한 학과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대개 공무원 내지 회사원들이 들어오는 학과이므로, 일반 학과와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고, 국가에서 따로 정원을 배분한 학과이니, 그냥 논외의 학과로 생각하시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이거야 헷갈려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이니 뭐..
다른 부분들에 대한 인식은 정확하시네요. 특히 철학과 강사 수에 대한 부분 잘 읽고 갑니다.
총남 2010/06/19 22:20 # 삭제 답글
아..그리고 저 중앙인 총남 맞습니다. ㅎ 어쩌다 타고타고 오다보니 여기로 왔네요 ^^다음에 또 기회될때 뵈어요.
박효진 2010/06/20 07:09 #
이크... 어떻게 여기까지. 올린 글도 없는데.별 건 없고 구조조정을 지켜본 '인문학도'의 관전평 같은 겁니다.
여러 사람 보여주고 싶은데, 우리 학교가 한물 간 이슈니까 뭐...
글로벌지식학부는 그런 곳이군요. 몰랐습니다.
이름만 보면 전략단위 티가 너무 많이 나서 -_-;;;
잘못을 인정하는 댓글을 달고, 내용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도록 하겠습니다.
1212 2010/12/12 05:59 # 삭제 답글
결국엔 없앤다는 과 다 살려놨죠박효진 2010/12/29 23:39 #
학부제로 묶어놓은 걸 살려놨다고 생각하시는건지...아니면 님꼐서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쳐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나름 과들이 있는데 그게 온전히 살아있어서 불만이신건지.
이 블로그를 요즘에는 잘 들르지 않아서 댓글을 늦게 남깁니다.